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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

제 8 호 떠나가는 모든 이들에게

  • 작성일 2025-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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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69
송지민

송지민 정기자 


입학식 날, 아니 입학이라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조금도 설레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지금 이 대학이 두 번째 입학이자 마지막이었기 때문이다. 다들 들뜬 기분으로 인사를 나누고 약속을 잡을 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학교가 불만족스럽다거나 동기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같은 이유가 아니었다. 그저 그냥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서 그랬다. 인연이라면 내가 원하지 않아도 이어질 것이고, 벌어질 일들이라면 내가 부정해도 어떻게든 나에게 올 것이기 때문에 그대로 그냥 가만히 있었다. 그렇게 고요하게 나의 1학년의 3월이 지나갔다.


4월, 각 단대별 학생회 및 동아리들이 등하교를 하는 학생들에게 열렬히 홍보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아직은 쌀쌀한 날씨에 저들은 왜 저렇게까지 할까?’싶은 마음이 들어 한 2-3분 정도 멀찍이 지켜보았다. 자신이 속해 있는 단체의 정체성을 밝히며, 그들의 목표와 그에 다가가기 위하여 하고 있는 활동들을 설명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들의 발자국으로 인해 향후의 기대효과와 확실한 변화 같은, 우리가 현실적으로 혹할 만한 것들은 없었다. 정말 그게 전부였다. 헌데, 처음엔 그들의 반짝이는 눈빛에 시선을 빼앗겼고, 그 다음엔 집에 가는 버스에서 그들의 모습을 곱씹게 되었다. 나는 그동안 무엇에 빠져 저토록 반짝이고 아름다운 눈빛을 가져본 적이 있었던가. 남들은 모르는, 혹은 이해하지 못하는 무언가로 향하는 저 열정 자체가 과연 청춘이라는 것일까. 나의 부모님도 사실은 나에게 그런 모습을 바라고 있던 것은 아닐까. 그러한 생각들로 뒤덮인 채 나는 집에 도착했다.


사실 부모님이 나에 대한 걱정을 하고 계신 것은 알고 있었다. 미성년자를 벗어나 한창 친구들과 술을 마시거나 놀러 다닐 시기에 나는 온종일 집 안 침대에서만 1년 넘는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도 무언가 변화해야 되겠다는 생각은 있었다. 설령 그것이 표면적인 변화일 뿐일지라도. 그래서 나는 그날 저녁 학생회와 동아리 하나씩 지원서를 작성했고, 바로 다음 날 면접을 보게 되었다. 면접은 별 어려움 없이 순조로웠고, 나는 그렇게 학생회와 동아리의 부원으로 속하게 되었다.


1년 동안 그곳에서 지내며 사람들이 왜 그렇게 소속감을 좇는지 그 이유를 찾고 싶었지만, 코로나19로 인하여 모든 학교 활동들이 중단되면서 결국 알아내지 못했다. 그렇게 나의 목적은 이루지 못한 채 2학년이 되었고, ‘지금까지 한 김에 더 해보자’라는 마음이었다. 다만, 1학년 때와 달라진 점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내가 무언가 자리를 맡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로 인해, 단체의 활동에 있어서 나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게 되었고, 나를 따라주는 사람들이 생겼으며, 대가성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 이 세 가지 요인으로 나는 나름의 책임감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그 책임감은 꽤 크게 작용했다. 돌아보면, 언제나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그 결과가 어땠는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결론적으로, 나는 사람들이 어딘가 소속됨에 가치를 두는 것에 어렴풋이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전에는 좁고 깊은 관계의 친구들만 있었던 반면, 넓은 분야의 사람들과 만나며 얕더라도 형성해 나가는 친분이 신선하기도 하고, 가끔 환기가 되었다. 그리고 나를 따라주는 사람들이 고마워 실망시키지 않고자 노력하는 내 모습도 좋았고, 좋은 피드백이 돌아올 때면 그간의 힘듦은 잊은 채 그저 뿌듯했다. 사람들과 얽히고설키며 유쾌한 순간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 과정에서 나의 성향과 내가 선호하는 사람들의 유형을 유추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이후의 관계에서 분명 도움이 되었다.


내가 찾고자 하는 것을 찾아서인지, 혹은 ‘또 다른 나’로 살았던 시간에 지쳤는지 이제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서 눈을 돌린 곳은 바로, 나의 인간관계와 앞으로의 미래였다. 졸업을 앞둔 학년이면 대부분의 학생들이 비슷했으리라 생각한다. 학교를 떠나 사회에 나가서도 나의 곁에 남을 사람들은 누구일지 궁금하기도 해서, 그동안 내가 쌓아온 관계에 대해 돌아보는 시간을 오랫동안 가졌다.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친했던 친구들은 아직도 나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가. 대학교에 입학한 뒤, 각 학년마다 새롭게 만난 사람들과는 어느 깊이까지 내려갔을까. 교외에서 만난 이들은 또 어떠한가. 대충 이런 생각들을 하며 한 명 한 명 떠올려보니, 그들과 함께했던 시간이 머릿속에서 연속된 사진처럼 흘러갔다.


그리고 이내 약간의 쓸쓸함을 느꼈다. 아무리 잘 맞았던 사람일지라도 하나의 언행이나 당시의 상황, 주변 환경이 우리 관계에 미묘한 변화를 불러왔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지만, 이미 느슨해진 줄은 양쪽이 동일한 타이밍에 팽팽하게 당기지 않는 이상 돌아가기는 어려워진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 이러한 관계에 놓여있다는 것을 깨닫고, 앞서 말한 쓸쓸함을 느낀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지난 과거를 후회한다거나 마음이 슬픈 정도까지는 아니다. 이전보다는 서로에 대한 온도가 식었을 지라도 여전히 미지근하게 남아있는 사람들이 있으며, 그 ‘남아있다’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주변을 관찰한 뒤에는 최대한 미뤄두고 싶었던 일의 차례가 왔다.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학생의 신분을 벗어나 사회로 나가야 하는데, 나는 아직 준비된 것이 없다. 모두 나와 같을까 아니면 나만 흘려보낸 걸까. 심각하게 걱정하지는 않았지만 마음 속에는 어딘가 불편한 감정이 계속 자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최대한 가벼운 마음으로 앞으로의 1년 정도만 그려 보기로 했다. 1년 뒤에 나는 이 정도의 결과를 내어야지. 이렇게 생각하니까 그동안 하기 싫었던 것들도 어느 정도는 해 볼 의향이 생겼다.


누군가는 나에게 시간이 아깝지 않냐며, 몇 년만 죽었다 생각하고 열심히 해보지 않겠냐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사람들은 실패가 잇따르는 이들에겐 각자의 성공 속도는 다른 법이라며 위로를 한다. 하지만 시작하는 데에 망설이는 이들에겐 어서 서두르길 바라는 가시 돋친 말들을 쉽게 뱉는다. 나는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두가 충분히 망설이고 시작하길 바란다. 자신조차도 과한가 싶을 정도의 걱정을 해도 그것 나름대로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걱정들이 앞으로 걸어갈 길에서의 자갈들을 치워주고 더 정돈될 길을 만들어주리라 믿는다.


이제 학교를 떠나는 우리 모두 고생 많았고, 그간의 행복했던 기억들은 추억으로, 쓰고 아팠던 기억들은 경험으로 남겨둔 채 딱 한 발짝만 앞으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