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나, 너, 그리고 우리
송지민 정기자 나의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말씀하세요. 내가 할 수 있는 한에서는 기꺼이 도와드릴 마음은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나에게 책임을 묻진 말아 주세요. 나는 당신이 나를 필요해서 조금의 힘만 얹었을 뿐, 선택은 본인의 몫이니까요. 언젠가 가족들과 나의 이러한 생각에 관해 이야기했는데, 아빠는 적잖이 충격을 받은 듯했다. 우리 아빠는 공동체를 추구하는 이타적인 사람이다. 아빠는 내가 개인주의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불편하게 느끼는 듯했고,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아빠, 개인주의라고 해서 이기적인 건 아니야.”, “아빠는 뭐가 다른지 모르겠어, 어쨌거나 자기 이익이 가장 중요한 거잖아.” 대충 이런 내용들의 대화가 몇 분 동안 오갔고, 서로 어색함만 남은 채 저녁 식사는 끝이 났다. 아빠도 나도 꽤 유쾌하지는 않은 시간이었다. TV에서나 보던, 나와는 다르다고 생각했던 그런 사람들이 서로였으니까. 그래서 나는 아빠와 좀 더 깊은 대화를 나누고 서로를 이해하고 싶어서 개인주의와 그 외의 것들에 대해서 찾아보기 시작했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동일시되는 현시점에서, 그 의미를 정확히 짚고 넘어가면 좋을 것 같다. -개인주의 : 국가나 사회보다 개인의 존재와 가치를 더 중요시하는 사상과 태도. -이기주의 : 자기만의 이익을 중심에 두고, 다른 사람이나 사회의 이익은 고려하지 않는 입장. 개인주의의 개념을 살펴보면, 그 어디에도 타인을 배제한다는 내용은 없다. 집단보다 자신의 가치와 자율성을 우선할 뿐이다. 다만, 비교적 현세대가 이전 세대들보다 개인주의 성향이 짙은 바람에, 오해가 빚어져 다툼이 생겨난 듯하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여, 혹은 이해하지 않으려 하여 개인주의자들과 집단주의자들은 서로를 ‘꼰대, (퇴색된 의미의) MZ’라고 칭하며 더욱 갈등은 심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QUITE QUITTING’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조용히 그만두기’라는 단어인데, 외국에서부터 발생하고 있는 사례로 현재 우리나라도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이는 요즘 세대들이 계약서상에 쓰인 본인의 업무 이외에 또 다른 업무를 시키거나 초과 근무, 혹은 원하지 않는 친목 등이 강요되었을 때, 조용하게 직장을 그만두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이전 세대들은 현세대들의 이러한 모습을 마냥 긍정적으로 바라보진 않는다. 그들은 계약서에 적힌 내용에서 무언가 더해지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느끼며, 자신에게 요구된 것들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계약서에 적힌’이다. 개인과 개인, 혹은 개인과 집단이 약속한 그 ‘계약서에 적힌’ 내용에서 나아가 무언가를 더 하지도, 반대로 덜 하지도 않으려는 것이다. 더불어, 부당하다고 느끼는 것에 대해 묵묵히 참고 견디려 하지 않는 이러한 행동을 이전 세대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세대에선 당연시되었으며, 그것 또한 해야만 하는 사회생활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충돌이 발생한다. 이러한 상황에 대하여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해졌고, 내가 생각하기에 집단주의 성향을 보이고 있는 사람과 개인주의 성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물었다. (아래 대화에서 A1은 집단주의 성향의 사람을, A2는 개인주의 성향의 사람으로 칭한다.) Q. 회사와 같은 집단에서 계약 당시 주어진 자신의 의무를 넘어서까지 일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1.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런 걸요. 그런데 이 삶이란 게 내 마음처럼 하고 싶은 대로 할 수는 없더라고요. 생계를 위해서, 와이프랑 우리 애들을 위해서 나는 이곳에 계속 있어야 하니까 마음은 그렇더라도 그게 참… A2. 모든 사람이 그렇게 생각할 것 같은데요? 일을 더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하지만 어떤 상황인지 봐야 할 것 같아요. 사소한 정도면 그냥 해줄 것 같기도 한데, 너무하면 글쎄요… 묵묵히 견디는 사람이 있을까요? Q. 답변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회식, 상사 혹은 팀의 남은 업무를 위한 야근, 본인 부서의 일이 아닌 업무 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1. 이게 애매한데… 젊은 사람들은 확실히 우리보다 싫어할 것 같긴 합니다. 우리도 싫긴 하죠. 근데 이게 아까 말씀드렸듯이 어쩔 수 없는 부분들이 생깁니다. 그러면 뭐 이제 그냥 하는 거죠, 그냥... 내가 뭘 어쩌겠어요. 그만둘 수도 없고... A2. 아... 난감한 질문이네요. 이것도 마찬가지로 마냥 좋아하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요? 그래도 요즘에 회식 문화가 바뀌는 추세라 저는 아직 크게 불만은 없는데, 가끔 지치긴 하죠. 제 지인은 많이 힘들어하더라고요. 회식 때문에 다음 날 일에 차질도 생기고 체력적으로도 힘들고 하니까는 업무 때문이 아니라 그것 때문에 이직 생각을 하더라고요. 뒤에 말씀하신 두 개는 솔직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불만이면 이직해야죠, 뭐. Q. 마지막으로, 'Quiet Quitting'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1. 좋게 보이진 않죠. 다 그런 건 아니지만 가끔은 요즘 친구들이 뭔가 우리 때만큼 의지가 없다는 생각도 합니다. 사회에서는 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 수는 없잖습니까. 그걸 이제 받아들이고 좀 열심히 해보려 해야 하는데... A2. 음... 뭐 갑작스레 그만두는 게 아니라 사전에 논의가 된 부분이라면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일을 하면서 자기랑 맞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본인이나 팀을 위해서라도 빠르게 그만두는 편이 저는 오히려 낫다고 보는데요. 그리고 그만두는 행위 자체에 있어서 욕할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요. 다 본인의 선택이니까요. 인터뷰를 마치고 나는 생각했다. 내가 예상했던 답변은 이런 게 아니라고. 그리고 내가 편협하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그 둘이 정반대의 입장이리라 생각했고, 어느 정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뉘앙스의 의견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그들이 내놓은 답변은 대개 ‘어느 정도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내포하고 있었고, 서로를 절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느낌은 어디에도 없었다. 우리 할아버지는 항상 말씀하셨다. 겸손한 사람이 되어 지민이 네가 가진 것을 나누면서 살아가라고,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되라고. 꽤 오랫동안 나는 할아버지의 말을 정확하게 이해하지는 못했었다. 그러니까 누구에게, 무엇을, 왜요? 하지만 이제는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할아버지는 내가 개인주의 혹은 집단주의 등 어느 한 쪽에 서길 바라셨던 것이 아니라, 그저 내가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든 우리 사회 속에서 조화롭게 어울리기를 바라셨던 것 같다. 그러기 위하여 내가 가진 것을 남에게 베풀라고 말씀하신 것이고, 이건 꼭 누군가에게 무엇의 이유를 가지고 베푸는 것이 아닌 그저 나와 다른 상황에 놓인 사람들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선뜻 베풀 줄 아는, 그러한 삶의 태도를 가지면 좋겠다는 소망을 담은 말씀인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그에 대해 어느 정도 동의하며 살아가고 있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삶이 길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나는 나와 다른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 과정에서 나는 끊임없이 나의 생각과 가치관에 따라 그들을 판단하지 않으려 애썼고, 사람을 대할 때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대하려 노력했다. 몇몇 사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나와는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 느껴 멀어지게 된 경우도 있었지만, 한 번도 그들이 틀렸기에 나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전하고 싶은 말은 바로 이것이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르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비로소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출발점에 설 수 있다. 자신의 감정, 혹은 신념에 따라 상대방을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게 되면, 결국 손해 보는 것은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아닌 경우도 있겠지만, 자신이 상대방을 어떤 결괏값으로 판단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러한 생각이 행동과 태도로 이어져 듣는 이도 나의 태도를 고스란히 느끼게 된다. 그렇게 되면 상대방도 무언지 모를 불쾌함을 느낄 것이고, 결국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대화의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자신의 감정, 혹은 신념에 따라 누군가를 ‘틀리다’고 해석하지 않고 ‘다르다’고 받아들이며 사람들을 대해보자. 그러면 분명 다른 이들도 당신의 해석을 받아들이고 의미 있는 대화와 관계를 이어 나갈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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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가는 모든 이들에게
송지민 정기자 입학식 날, 아니 입학이라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조금도 설레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지금 이 대학이 두 번째 입학이자 마지막이었기 때문이다. 다들 들뜬 기분으로 인사를 나누고 약속을 잡을 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학교가 불만족스럽다거나 동기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같은 이유가 아니었다. 그저 그냥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서 그랬다. 인연이라면 내가 원하지 않아도 이어질 것이고, 벌어질 일들이라면 내가 부정해도 어떻게든 나에게 올 것이기 때문에 그대로 그냥 가만히 있었다. 그렇게 고요하게 나의 1학년의 3월이 지나갔다. 4월, 각 단대별 학생회 및 동아리들이 등하교를 하는 학생들에게 열렬히 홍보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아직은 쌀쌀한 날씨에 저들은 왜 저렇게까지 할까?’싶은 마음이 들어 한 2-3분 정도 멀찍이 지켜보았다. 자신이 속해 있는 단체의 정체성을 밝히며, 그들의 목표와 그에 다가가기 위하여 하고 있는 활동들을 설명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들의 발자국으로 인해 향후의 기대효과와 확실한 변화 같은, 우리가 현실적으로 혹할 만한 것들은 없었다. 정말 그게 전부였다. 헌데, 처음엔 그들의 반짝이는 눈빛에 시선을 빼앗겼고, 그 다음엔 집에 가는 버스에서 그들의 모습을 곱씹게 되었다. 나는 그동안 무엇에 빠져 저토록 반짝이고 아름다운 눈빛을 가져본 적이 있었던가. 남들은 모르는, 혹은 이해하지 못하는 무언가로 향하는 저 열정 자체가 과연 청춘이라는 것일까. 나의 부모님도 사실은 나에게 그런 모습을 바라고 있던 것은 아닐까. 그러한 생각들로 뒤덮인 채 나는 집에 도착했다. 사실 부모님이 나에 대한 걱정을 하고 계신 것은 알고 있었다. 미성년자를 벗어나 한창 친구들과 술을 마시거나 놀러 다닐 시기에 나는 온종일 집 안 침대에서만 1년 넘는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도 무언가 변화해야 되겠다는 생각은 있었다. 설령 그것이 표면적인 변화일 뿐일지라도. 그래서 나는 그날 저녁 학생회와 동아리 하나씩 지원서를 작성했고, 바로 다음 날 면접을 보게 되었다. 면접은 별 어려움 없이 순조로웠고, 나는 그렇게 학생회와 동아리의 부원으로 속하게 되었다. 1년 동안 그곳에서 지내며 사람들이 왜 그렇게 소속감을 좇는지 그 이유를 찾고 싶었지만, 코로나19로 인하여 모든 학교 활동들이 중단되면서 결국 알아내지 못했다. 그렇게 나의 목적은 이루지 못한 채 2학년이 되었고, ‘지금까지 한 김에 더 해보자’라는 마음이었다. 다만, 1학년 때와 달라진 점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내가 무언가 자리를 맡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로 인해, 단체의 활동에 있어서 나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게 되었고, 나를 따라주는 사람들이 생겼으며, 대가성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 이 세 가지 요인으로 나는 나름의 책임감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그 책임감은 꽤 크게 작용했다. 돌아보면, 언제나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그 결과가 어땠는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결론적으로, 나는 사람들이 어딘가 소속됨에 가치를 두는 것에 어렴풋이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전에는 좁고 깊은 관계의 친구들만 있었던 반면, 넓은 분야의 사람들과 만나며 얕더라도 형성해 나가는 친분이 신선하기도 하고, 가끔 환기가 되었다. 그리고 나를 따라주는 사람들이 고마워 실망시키지 않고자 노력하는 내 모습도 좋았고, 좋은 피드백이 돌아올 때면 그간의 힘듦은 잊은 채 그저 뿌듯했다. 사람들과 얽히고설키며 유쾌한 순간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 과정에서 나의 성향과 내가 선호하는 사람들의 유형을 유추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이후의 관계에서 분명 도움이 되었다. 내가 찾고자 하는 것을 찾아서인지, 혹은 ‘또 다른 나’로 살았던 시간에 지쳤는지 이제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서 눈을 돌린 곳은 바로, 나의 인간관계와 앞으로의 미래였다. 졸업을 앞둔 학년이면 대부분의 학생들이 비슷했으리라 생각한다. 학교를 떠나 사회에 나가서도 나의 곁에 남을 사람들은 누구일지 궁금하기도 해서, 그동안 내가 쌓아온 관계에 대해 돌아보는 시간을 오랫동안 가졌다.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친했던 친구들은 아직도 나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가. 대학교에 입학한 뒤, 각 학년마다 새롭게 만난 사람들과는 어느 깊이까지 내려갔을까. 교외에서 만난 이들은 또 어떠한가. 대충 이런 생각들을 하며 한 명 한 명 떠올려보니, 그들과 함께했던 시간이 머릿속에서 연속된 사진처럼 흘러갔다. 그리고 이내 약간의 쓸쓸함을 느꼈다. 아무리 잘 맞았던 사람일지라도 하나의 언행이나 당시의 상황, 주변 환경이 우리 관계에 미묘한 변화를 불러왔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지만, 이미 느슨해진 줄은 양쪽이 동일한 타이밍에 팽팽하게 당기지 않는 이상 돌아가기는 어려워진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 이러한 관계에 놓여있다는 것을 깨닫고, 앞서 말한 쓸쓸함을 느낀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지난 과거를 후회한다거나 마음이 슬픈 정도까지는 아니다. 이전보다는 서로에 대한 온도가 식었을 지라도 여전히 미지근하게 남아있는 사람들이 있으며, 그 ‘남아있다’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주변을 관찰한 뒤에는 최대한 미뤄두고 싶었던 일의 차례가 왔다.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학생의 신분을 벗어나 사회로 나가야 하는데, 나는 아직 준비된 것이 없다. 모두 나와 같을까 아니면 나만 흘려보낸 걸까. 심각하게 걱정하지는 않았지만 마음 속에는 어딘가 불편한 감정이 계속 자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최대한 가벼운 마음으로 앞으로의 1년 정도만 그려 보기로 했다. 1년 뒤에 나는 이 정도의 결과를 내어야지. 이렇게 생각하니까 그동안 하기 싫었던 것들도 어느 정도는 해 볼 의향이 생겼다. 누군가는 나에게 시간이 아깝지 않냐며, 몇 년만 죽었다 생각하고 열심히 해보지 않겠냐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사람들은 실패가 잇따르는 이들에겐 각자의 성공 속도는 다른 법이라며 위로를 한다. 하지만 시작하는 데에 망설이는 이들에겐 어서 서두르길 바라는 가시 돋친 말들을 쉽게 뱉는다. 나는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두가 충분히 망설이고 시작하길 바란다. 자신조차도 과한가 싶을 정도의 걱정을 해도 그것 나름대로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걱정들이 앞으로 걸어갈 길에서의 자갈들을 치워주고 더 정돈될 길을 만들어주리라 믿는다. 이제 학교를 떠나는 우리 모두 고생 많았고, 그간의 행복했던 기억들은 추억으로, 쓰고 아팠던 기억들은 경험으로 남겨둔 채 딱 한 발짝만 앞으로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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